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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영화 <미인도>가 개봉할 당시 방송에서는 이정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바람의 화원>을 방영하고 있었다. 신윤복이 여성이었을 것이라는 신선한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미묘한 로맨스와, 여성이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설득력을 가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신윤복의 화폭에 관한 이야기다. 이 모티브가 소설로 씌어지고, 이것이 드라마로 또 영화로까지 이어졌는데 영화 <미인도>는 이정명의 소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니 우연의 일치라고 일단 해야겠다. 그만큼 신윤복의 화폭이 여성을 너무도 잘 묘사했다는 뜻이려니 하고 넘어가자.

 

그럼 신윤복이 여성이라고 했을 때 더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먼저 마찬가지로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김홍도와의 로맨스가 가능해진다. 두번째로는 풍속화 속에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던 신윤복의 미술이 '여성이었기에 가능했던 작품'으로써 더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러니까 자연히 여성 신윤복을 가정한 모티브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이 두가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소설은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드라마 <바람의 화원>도 그랬고 이 영화 <미인도>도 그렇다.

 

<미인도>는 좀 급박하게 돌아가는 느낌이 다분하다. 그래서 여인 신윤복을 둘러싼 삼각관계의 로맨스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여기에 논란이 되었던 베드신까지 포함한다면 거의 에로에 가까워진다. 여성임이 밝혀지기 전에 보여주는 복선 또한 너무 노골적이고 진부해서 극의 초반부터 지루해진다. 보수적인 조선시대에 '남장여성'이란 설정이 줄 수 있는 긴장감 역시 영화는 잘 표현하지 못한다. 신윤복이 여성이란 점은 극의 초반에 너무도 허무한 방식으로 들통나 버리고 만다. 때문에 남장여성이란 캐릭터가 줄 수 있는 동성애와 이성애의 경계에서 줄을 타는 듯한 긴장감이 현저히 떨어진다. 신윤복은 시종일관 남자로 살수 밖에 없는 여성, 그러니까 사회적으로는 남성이면서 생물학적으로는여성인 인물이 아니라 단지 남자 옷을 입었을 뿐인 여성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아무리 옷이 날개라지만 날개짓을 해야 날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생물학적 여성이 사회적 남성으로 사는 어려움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신윤복의 그림 세계는 어떨까? 신윤복을 둘러싼 두 명의 남성 가운데 한 명인 강무는 로맨스를 이루는 인물임과 동시에 신윤복을 풍속의 세계로 안내하는 가교의 역할도 하는 인물이다. 신윤복은 강무의 이끌림 하에 한양의 풍속을 두루 경험하는데 풍속이 그림으로 표현되는 과정은 다분히 직설적으로 표현돼 있다. 더군다나 극의 흐름 자체가 빠르다보니 신윤복의 풍속화는 그저 기계적으로 삶의 다양한 모습이 종이 위에 옮겨진 것처럼 비친다. 결국 신윤복이 풍속화에 담으려 했던 생각은 극중 인물의 입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전파될 뿐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지 않는다.

 

신윤복을 굳이 여성이라고 해야 했을까? 신윤복을 여성이라고 한 것은 결국 로맨스 때문이었던가? 영화를 보고나서는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예술이나 미(美)를 거세하고 여성 신윤복을 탄생시킨 것이란 말인가? 남성으로 알려진 인물을 여성으로 그린 영화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영화를 보고 난 뒤 "진짜 여자였던 거 아니야?"라는 물음 쯤은 관객들이 스스로 던져 보일 수 있도록 해야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난 뒤 드는 생각이 "여자건 남자건 상관없겠다" 라면 결국 여성 신윤복은 억지 로맨스를 위한 인위적 장치에 불과한 것이 되고만다. 그런데 그 로맨스조차 와닿지 않는다니!

 

쓸데없이 긴 시간을 차지한 노출씬 ─ 다른 의미에선 긴 시간의 노출씬이 쓸데없진 않았지만(?!) ─ 은 마케팅엔 도움이 되었을지언정 로맨스엔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았다. 김규리(당시엔 김민선)과 김남길의 베드씬은 그렇다쳐도 앞 쪽의 장면은 그저 눈요기 이상으로는 생각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결말은 '미인도'라는 작품이 님을 향한 사랑을 담아 신윤복이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다는 건데,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탄생시킬만큼의 격정 로맨스였냐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