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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침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수능 시험날이었다. 주변에 수능 시험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이 전혀 없어서인지 내 수능이 끝난 뒤로 이 날은 그저 여느 보통 날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단지 아침 뉴스가 조금 호들갑스러울 뿐이고, "수능 긴급 지원 차량"이라고 써 붙여 놓았던 군인차량을 한 대 보았을 뿐이다. 수능이 어려웠느니, 쉬웠느니 하는 뉴스들은 저녁 때부터 쏟아졌다. 나는 심지어는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포털에 굵은 글씨로까지 그렇게 올라올까 라는 생각마저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엔 고3 수험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기사들이 올라왔다. 이 쯤되면 중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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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우연히도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을 밤 늦게 집 근처에서 만났다. 워낙 왕래가 없었던 친구들이라 고등학교 졸업 이후의 소식을 거의 알지 못했다. 친구들에 대한 기억은 입학을 앞두고 있는 스무살에서 끊겼는데 어느 새 다 직장을 구한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한 친구는 이미 두번째 직장을 알아보고 있을 정도였고. 그런 친구들을 마주하고 있으니, 날이 날인지라 지금 이 친구들의 모습이 우리가 수 년 전에 보았던 수능시험과 과연 큰 관련이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없었다.

    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 Kelley를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만든 짧은 영상 한 편 때문이었다. “Korean High School”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18분 남짓의 영상에는 푸른 눈의 Kelley가 바라본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일상이 담겨 있다 처음엔 영상이 신기했다피부는 하얗고 금발머리인데다 영어가 자연스러운 한 여자가 자기 소개를 하더니 그녀의 시선에서 바라본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의 모습이 등장한다김정일 말고는 사람들이 아는 바가 없는 “Korea”에 살아서 그런지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선은 늘 큰 호기심을 유발한다그래서 그녀가 바라본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다 

 

       

(Korean Highschool - Kelley Katzenmeyer) 

  

 

  • 그래도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시간이 좀 지나서인지영상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모습들은 어떤 추억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동시에 낯설게 다가왔다. 그들의 모습은 내가 고등학생일 때와 같으면서도 달랐다. 여전히 그들은 아이돌을 좋아하고 여전히 그들은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고등학생일 때보다 더 외모에 민감한 것 같기도 했다. 쌍커풀을 '만드는' 모습은 나에게도 놀라웠다. 그러나 그 모습들이 나에게 익숙하든, 낯설든 간에 하나 같이 답답하고 안쓰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모든 매체가 그렇겠지만 영상은 특히나 편집의 과정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편집하는 이의 시각이 베어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자연스레, 한 편으로는 추억에 발을 딛고 있고 또 한 편으로는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이 영상을 찍고 편집했을 그 누군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Kelley를 만났다.

  • Kelley를 직접 만나서 우리들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 그리고 그녀의 영상에 담겨 있는 지금 누군가의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미국에서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에 10시간도 넘게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한국 친구로부터 듣고, 한국이 궁금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와서는 정말로 하루에 16시간씩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녀의 표현을 따르자면 그것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Dae Bak(대박)"이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수업이 끝나면 또 자습을 하고 자습이 끝나면 또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다.

  • 우리는 우리가 고등학생일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우리도 다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그리고 거기에 한가지 덧붙이면 그런데 우리는 행복하기도 했다고. 그녀는 왜? 라고 반문했다. 나는 하루 온종일 친구와 함께 있을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약간은 씁쓸하게도 그 때는 그 외의 행복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하루종일 학교에 있으면 그 바깥에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칠 수 밖에 없었다고.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그런 아이러니로 둘러싸여 있다. 성적 고민, 외모 고민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돌의 춤을 따라 추며 더없이 즐거워하고, 서로  같이 있으면 그 이상 행복할 것이 없는 것처럼 어울리는 고등학생들 자체가 사실 그런 아이러니다.

  • 사실 그녀는 그녀의 영상 속에 등장하는 학생들이 갖고 싶어하는 것들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자연스러운 쌍커풀과 큰 눈을 가지고 있으며 내년에 미국의 명문 콜럼비아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영어를 못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영상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이러한 그녀를 부러워 하겠지만, 재미있게도 그녀가 온 나라의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교육을 부러워 했다. 나는 사실 이러한 그녀가 만든 영상을 보며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와 그렇게 되고 싶어 온 힘을 쏟는 나라 간의 격차를 느끼기도 했다. 부유한 나라의 사는 그녀에게는 이렇게 아둥바둥 사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모습이 더 가엾게 보이겠구나 싶어 한 편으로는 찝찝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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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오히려 Kelley는 그렇기 때문에 그녀 스스로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왜 그렇게 안타까운지를 가장 잘 드러내 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기가 공부를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미국에서는 Columbia 대학을 갈 수 있다고 했다. 대학은 학생이 어떤 분야에서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를 본다고 했다. 그녀는 이 짤막한 영상을 만들기 전에 미국에서 단편 영화 한 편을 만들었고 그 영화가 미국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을 직접 만났다. 그녀는 그런 교육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학창시절은 왜 한 편으로는 행복하면서도 늘 걱정과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지를 더 잘 알지도 모른다. 왜 이런 영상을 찍었냐고 물었다. 그리고 자기가 조금이나마 변화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렇게 변화해온 역사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아마 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변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녀가 그렇게 변화와 희망에 대해 신념에 찬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 분위기는 일면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 그리고 나 역시 생각했다. 이 아이러니들을 좀 더 명확한 무언가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 편으로는 성적 고민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학창시절이라는 이유만으로 행복해 하는 아이러니 말이다. 학생들이 단지 행복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좋지만 학교는 가고 싶지 않은 모순을 극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마 그렇게 되면 짙은 쌍커풀과 큰 눈을 가진 한 금발의 미국인이 성적과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로 삶을 비관하기까지 하는 우리나라의 학생들을 영상에 담는 일도 더이상 없지 않을까.

    행복해 보이면서도 슬픈 학생들의 이야기는 그녀의 영상에서 끝나길 바란다.

 

 

 

 

  • 인터뷰에 응해준 캘리 정말 감사합니다. ( 홈페이지를 통해 작품을 위한 모금을 하고 있습니다. )

 

 

 

글쓴이 : 이주호 (@shevran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