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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건축가>


감독: 정재은

출연: 정기용





자신이 믿는 바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봅니다.

때론 현실의 한계를 탓하며 때론 이상의 허탈함을 탓하며

우리는 그렇게 사는 대로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건축가 정기용 님이 일민 미술관에서의 회고전을 준비하는 과정이 담긴 이 다큐멘터리는,

대장암 판정 이후 죽음을 앞둔 한 건축가의

건축과 삶에 대한 신념과 철학을 엿보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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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정기용 님에 대한 첫인상은 좀 남달랐습니다.

무주의 한 동네에 면사무소를 짓기 위해 직접 마을 주민들을 만나고 다니다가

목욕탕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면 사무소에 목욕탕을 지은 그.

건설이 끝나고 몇 년 뒤 무주에 다시 찾은 정기용 님은

발가벗고 탕 안에 들어가 앉아 목욕을 마치고 나서 이제 이 건물을 다 완성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요. 그 한마디가 저에게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건축이라는 게 건물을 설계하고 튼튼하게 지으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대개 그렇듯

마을 주민들처럼 진짜 목욕탕을 사용하고 나서야 온화하게 웃는 그 얼굴이 진정성이라는 세 글자를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전국 곳곳에 기적의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어린이 도서관

무주에 설계한 공공 프로젝트 등은 건축에 대한 그의 믿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규모가 어떠하다, 비용이 얼마나 들었다 등의 한정된 표현으로만 건축물을 말해왔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기용 님은 건축을 삶에서 바라봅니다

우리의 삶에 가장 밀접하게 닿아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 공간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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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디자인 서울의 동대문 재건축 프로젝트를 대하는 정기용 님의 태도가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건축물은 그것이 세워지는 곳의 역사와 이야기를 모두 함께 해온 존재인데 한국에는 오래된 건축물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지요

해외 유명 건축가에 의해 세워지게 되는 동대문 운동장은 서울 시민의 것이 아니라 그 건축가의 것이라는 말은 공감을 자아냅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다니는 학교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화여대 ECC는 유명한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의 설계를 따랐습니다

처음 학교를 찾는 사람들은 그 규모의 특이한 구조가 인상적이라고 합니다만 

휴학 후 복학을 하고 처음 학교에 들어섰을 때 ECC를 본 제 견해는 거대한 철골 괴물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부지는 한정적이기에 많은 시설을 들이려고 지하를 최대한 이용한 아이디어는 새로웠지만 

이 건물이 대체 우리 학교와 무슨 연결 고리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답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정기용 님의 생각을 빌려서 보면 한 학교의 백 년이 넘는 역사와 그 시간을 거쳐간 사람들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ECC에는 하나도 반영되지 못한 것만 같았습니다

정원처럼 나무를 심거나 교표를 여기 저기 붙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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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님의 건축과 삶에 대한 철학은 그가 '흙 건축'을 좋아했다는 것만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하나 낱알로는 작고 힘없는 흙이지만 그것이 뭉치면 집의 담이 되고 벽이 되는 단단한 힘을 갖게 되지요

집을 짓는 일, 공공 건축물을 짓는 일은 어쩌면 그렇게 흩어진 사람들을 한데 모아주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소란스럽지도 과장되지도 않게 

은근하지만 가슴에 와 닿는 정기용 님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어느덧 마지막 장면에서는 눈물까지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말하는 건축가행하는 건축가이기도 했으니까요


잔잔한 감동이 남는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사진 출처: 말하는 건축가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talking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