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을 고백합니다”라는 퍼포먼스를 보고 왔다. 퍼포먼스라는, 하나의 장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이 장르가 늘 그렇듯이, 난해하고 알 수 없었다.

퍼포먼스는 무용수의 몸짓과 말, 그리고 그녀가 직접 취재한 온갖 종교적 인간들의 영상물이 곁들여진다. 기독교, 증산교, 그리고 처음 들어봐서 기억도 나지 않는 종교 등 온갖 종교를 전전한 할아버지의 인터뷰 영상 뒤에, 그녀는 알 수 없는 무용들을 펼친다.

“제가 이 무용을 저 할아버지 앞에서 했는데요..”

관객들은 웃는다. 

“그 할아버지가 그러더라고요. 귀신 들린 거 아니냐고. 니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귀신이 들린 것 같다고.”

관객들은 또 웃는다.

그리고 무용수는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자기가 이런이런 감정을 이런이런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저런저런 감정을 저런저런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 이것과. 이런이런 신이 들려서 이런이런 굿을 하는것, 그리고 저런저런 신이 들려서 저런저런 굿을 하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

성경에 이르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말씀이 만물이 되었다고? 너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의 이러이러한 감정이 이러이러한 몸짓이 되었다고? 이것 또한 허무맹랑하지 아니한가?

나는 그녀의 퍼포먼스를 이렇게 받아들였다.


IMG_1581.JPG



태초에 춤은 어떻게 내용으로부터 비롯되었을까? 

춤과 공연의 원형을 담은 제의에 대한 탐구로서 서영란은 전문화된 무당 위주의 의식보다 마을 주민들이 자생적으로 유지하는 가장 비공식적이고 순수한 형태의 의식을 보기 위해, 또한 그것이 현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유효하게 운동하고 있는지 보기 위해 도시 안에 남아있는 마을굿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하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무속신앙이 행위와 연결된 방식을 역추적하고 이는 다시 춤의 형태와 내용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근대화 과정 속에서 이제는 가상적 현실이자 박제된 노스탤지어가 된 마을굿을 안무화하는 서영란의 움직임은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를 이어 다닌다. 

http://www.festivalbom.org/Home/2012/Program/KR2_08.as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