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 신부의 편

 

 

위로와 치유라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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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클라우스 해로

출연: 카리나 라자르드(레이라), 헤이키 노우시아이넨(야곱 신부), 주카 케이노넨(우편배달부)

 

 

 

살인죄로 옥살이를 하다가 특별 사면된 레이라가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긴다.

외딴 곳에 있는 낡은 집, 그곳엔 앞을 볼 수 없는 야곱 신부가 있다.

 

레이라는 불친절하고 차갑지만

그게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취하는 최후의 방어막인 것 같다.

다시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그 누구에게도 여린 살갗을 보이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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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신부를 위해 레아라가 할 일은

전국 각지로부터 오는 사람들의 편지를 읽어주고

야곱 신부의 말을 편지로 적어주는 것.

그러니까 야곱 신부는 사람들의 고민과 문제를 편지로 받아

그들을 위한 기도와 제언으로 답장을 보내는 일을 일생의 업으로 하고 있다.

야곱 신부에게 그 일은 임무를 넘어 살아가는 이유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편지가 오지 않게 되고

야곱 신부의 마음은 황량해져만 간다.

레이라는 귀찮을 일을 하지 않게 되어 반가워하다가

이내 삶의 방향을 상실한 야곱 신부의 모습을 보며 작은 방안을 마련한다.

 그러는 과정에 숨겨져 있던 사연이 드러나고

진심은 진심과 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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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치유라는 말이 너무 흔해서

그 진정성까지 퇴색되는 것 같다.

위로를 해준다, 치유를 해준다는 말이 너무 무섭다.

 

주는 손은 늘 받는 손보다 위에 있기 마련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준다는 것 역시

내가 누군가보다 더 위에 있다는 관계를 (의도하건 의도치 않건) 내포하고 있어서 불편하다.

 

결국 주고 받는 게 아니라

손을 잡고 가는 것 같다.

 

일방향적인 위로도 없고 무조건적인 치유도 없다.

위로하며 위로 받고 치유하며 치유 받는다.

레이라와 야곱 신부의 관계가 그러했고

우리들의 관계가 그러하다.

 

 

 

 

시덥잖은 지식으로도 조언을 하다보면 내 마음을 다잡게 되고

어설프게라도 위로를 하다보면 내 마음이 위로 받게 된다.

 

내 일은 절대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경계는 흐려지고 나는 확장되며 사람은 함께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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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영화다.

영화 내내 전달되는 색감과 소리, 영상이 아름답다.

어딘가에 어느 시점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