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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pe Besson (필립 베송) - 포기의 순간

 

 

박형진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게 만들었다는 책을 빌려왔습니다.

저희 집에 티비가 없다고 말하면 모두들 책 많이 보겠다고들 생각하시는데

티비가 없는만큼 그 시간 오롯이 컴퓨터에 쏟아서 그런지 독서량이 미미합니다.

오랜만에 집어든 책이라 그런지 처음 몇 페이지는 난독증 있는 사람처럼 눈, 손, 머리가 따로 놀다가

저자의 필력에 이끌려 자연스레 쉬지 않고 끝까지 읽어내렸습니다.

 

박형진과 같이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저자의 글 풀어내는 방식이 저는 참 좋더라구요.

진행되고 있는 상황의 명확한 그림을 짚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지만,

주인공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라지브, 그리고 베티와의 대화를 통해

과거와 지금을 오가며 덤덤히 퍼즐을 맞추는 그림들은 소설 속 장면들의 시각적인 상 보다는

심적 상을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이 느껴집니다.

 

삶, 죽음, 외로움, 경계, 타자, 포기, 선택, 변두리 등의 단어들이 머리에 남는군요.

 

 

 

 

책 본문 중 p.138 발췌

 

 

 사실 우리는 세상이 흑과 백으로, 무고한 사람들과 죄인으로, 성자와 악한으로 구성되어 있기를 바란다.

분명하게 그어진 선은 우리를 안심시킨다. 그러면 우리는 그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일과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회색은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다. 흑과 백, 둘 중 하나가 아니고 그 사이인 것은 어디에 위치시켜야 할지 알 수 없다.

경계선은 명확하게 정해지고 그어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어느 쪽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어느 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하고 뚜렷하고 곧은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게는 현실은 그 반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내 머릿속 생각을 읽고 있는 듯 라지브가 나직이 읊조린다. "빛과 그림자는 분리할 수 없다고 배웠습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도 조금 발췌하여 붙입니다.

 

 

 죽음, 죄책감, 다수의 증오에 맞닥뜨린 개인, 굳센 사랑이라는 주제와, 짧고 간결한 문장,

단순하지만 적확한 어휘, 선명한 이미지, 감상과 감수성 사이를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감정의 관조,

일체의 군더더기를 발라내고 핵심만 남긴 문체라는 형식. 『포기의 순간』은 영락없는 필립 베송의 소설이다.

 

 단 몇 줄만으로도 주인을 알아볼 수 있는 개성 강한 문체, 혐오스럽기보다는 그로테스크해서

독특한 감상을 자아내는 인간 내면의 어두움에 대한 천착, 간결하고 감상적인 문장들 사이사이 꽂아놓은

촌철살인의 단상들, 시류에 영합하지 않으면서도 삶에 가까운 언어들, 목청을 높이는 대신 침묵으로 촉구하는

자유를 향한 갈망과 틀에 맞춰진 삶의 거부, 매년 약속처럼 꼬박꼬박 내놓는 신작.

 2000년 어느 날 갑자기 프랑스 문단에 나타난 서른네 살의 무명작가였던 필립 베송의 존재감이

오늘날 현대 프랑스 문단에서 돋을새김된 이유들일 듯하다.

 

 고정 독자들 역시 변함없이 열성과 찬사를 보내고 있다.

출판사 부스마다 내로라하는 스타급 작가들이 포진했던 파리의 도서 박람회에서,

사인을 받으려고 독자들이 줄을 선 작가는 마르크 레비, 아멜리 노통브, 장 자크 상페, 필립 베송 정도였다.

2011년 현재, 그는 열한 번째 장편이자, 등단작  『인간의 부재 속에서』의 속편인 『인간들 사이로의 귀환』을 내놓았고,

잔 모로가 주연을 맡은 영화 <잘못된 만남>을 비롯, 서너 편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후 앙드레 테시네와 함께

시나리오 작업 중이며, 케이블 채널인 파리 프르미에르의 방송 프로그램 <파리 데르니에르>의 사회자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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