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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http://kor310.tistory.com/145

 

The First Emperor Augustus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Anthony Everitt

앤서니 에버렛 지음/조윤정 옮김

출판사 : 다른세상

 

:: 아우구스투스의 전 생애를 전기 형식으로 다룬 책.
   삼국지 같은 소설이 아니라 역사적 고증을 거친 사실을 설명하고,
   부족한 부분은 예측으로 서술해 놓았다.

   예를 들면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에 관해서
   전해내려오는 바는

 

 "드디어 때가 왔구나." 그녀가 말하면서 무화가를 치우자, 뱀의 모습이 드러났다. 뱀이 그녀가 내민 팔을 물었다. 플푸타르코스에 따르면, 39세의 클레오파트라는 "왕실 의복을 입은 채 금빛 소파에 쓰러져 죽어 있었다. 두 명의 여자 몸종 가운데 이라스는 그녀의 발밑에 역시 죽어서 누워 있었다. 비틀거리며 이미 자신의 머리조차 가누기 힘들 지경이 된 카르미온은 여왕이 머리에 쓰고 있는 왕관을 똑바로 잡아주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이처럼 로맨틱하고 비극적인 결말은 어디까기가 진실일까? 선전의 안개가 역사적인 기록들을 가리고 있으니 의심해볼 만하다 하겠다. 사실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에게는 클레오파트라 가 살아있는 것보다는 죽는 게 훨씬 더 편했을 것이다. 여자를 처형하는 것은 로마의 방식이 아니었다. 로마에게 열릴 개선식에 그녀를 끌고 가는 것이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 옥타비아누스는 그녀의 이복동생 아르시노에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개선식에서 사슬에 묶인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군중들의 동정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클레오파트라를 설득하여 자살을 하게 만들어야 했다. 어쩌면 진실은 이러했을지 모른다. 옥타비아누스는 그녀에게서 자살의 의도를 전혀 발견할 수 없자, 나이가 그녀의 반밖에 안 되고 결코 그녀의 애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돌라벨라를 찾는다. - 중략 -
 클레오파트라가 정말로 어떻게 죽었는지는 디오의 얘기를 믿는 게 옳을 것이다. 그는 "아무도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집트 코브라 얘기는 사실 믿기 힘들다. 왜냐하면 이집트 코브라는 대개 길이가 2미터 반인데, 이 정도면 아무래도 무화과 바구니에 넣기도 힘들고 다루기도 힘들다. 또 이집트 코브라가 한 번 문다고 해서 꼭 죽는 것은 아니다. 죽는다고 해도, 두 시간은 지나야 숨을 거둔다.
 옥타비아누스가 클레오파트라를 계획적으로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왕을 제거하는 것이 그에게 유리했다는 것이다. 본문 P322~323

 

 이런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전투에 관한 묘사도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처럼 전투를 시작했다. 그리고 옥타비아누스가 대승했다. 이런 형태의 형식으로 설명한다. 조사된 사실 위주의 설명으로 이루어져있다. 사실 어떤 전쟁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그 전쟁 당시에 서술되었던 세세한 기록이 아니고서는 기원전 5세기의 전쟁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전쟁에 대한 세세한 기록을 하자면 아우구스투스의 전기는 500페이지의 한 권의 책이 아닌 500가 넘는 여러 권의 책으로 서술되어야 했을 것이다.

 

- 전쟁이 시작했다.
  전쟁이 끝났다. -

 

유머러스하면서도 객관적이지 않은가?

이것은 비꼬는 것이 아닌 이 점이 재밌었고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다.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이 30페이지?(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그 명성에 비해 짧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도에서 끝났던 것처럼...

 

로마시대의 정치관에 대한 글들을 시인이 설명한 것이 많다.
아우구스투스도 스스로의 전기를 썼었던 것처럼 기록에 능하고 또 부지런히 일했다.

게다가 아우구스투스는 지금의 한국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는데 다음 기록을 보고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우구스투스는 티투스 리비우스 같은 작가가 두려움도 호의도 없이 이 문제(안토니우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로마법 재정, 편찬에 관한 내용 - 공화정이나 왕권이나의 문제등등)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표현하기를 바랐다. 아우구스투스와 나이가 비슷했던 리비우스는 갈리아 키살피나의 파타비움(오늘날의 파도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직에 진출하기 위한 노력은 해보지도 않았고, 대신 건국 때부터 기원전 9년까지 로마의 장대한 역사를 쓰는 데 긴 생애를 바쳤다. 그는 로마 최초의 역사전문가 중 한 명이었다. 그전까지는 역사는 보통 은퇴한 정치가들의 소일거리에 불과했다.
 리비우스의 세계관은 도덕적이고 낭만적이었다. 당대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의 대잔 [로마 건국사] 서문에서, 그는 역사 기술이 현세계의 고통을 피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썼다. "최근 부가 우리를 탐욕스럽게 만들었고, 자기 방종이 갖가지 과도한 육체적 쾌락을 통해,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우리를 개인적인 죽음 그리고 집단적인 죽음과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문제는 기원전 2세기에 시작되었다. 이때 원로원이 별 수고 없이 동방에서 식민지를 획득했다. 처음에는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그 다음에는 소아시아와 시리아였다. 로마의 지도층은 아시아에 자리 잡은 그리스인의 사치스러운 생활방식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로마의 타락을 가장 잘 보여주는 메타포는 안토니우스의 생애 그리고 클레오파트라로 인한 그의 성적 타락과 파멸이었다.
 이런 도덕적 타락은 정치적 타락을 수반했다. 그리하여 권력은 일련의 이기적인 군벌들 손에 들어갔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였다. 그는 수 세기 동안 정체 형태로 전통적인 로마적 가치를 구현하고 있떤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로마적 가치는 이제 사라져 버렸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는 역시 군벌이기는 했지만, 내전에서 카이사르에 반대해 싸웠고, 공화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리하여 그는 공화정의 상징이 되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리비우스는 "폼페이우스를 너무도 열렬히 찬양하여 그와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아우구스투스는 그를 '폼페이우스파'로 불렀다." 그는 부루투스와 카시우스를 악당이나 아버지를 죽인 자로 부르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이 그들을 모두 그렇게 부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리비우스 혼자만 공공연하게 공화정에 대한 향수를 표현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네이스]에서 아우구스투스의 계관 시인은 심지어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도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까지 했다. 카토는 옵티마테스를 이끌고 카이사르에 반대하다가 아프리카에서 전투에 패배한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장 완고한 공화파이자 융통성 없는 순수주의자였다.
 악티움 해전의 승자만이 아이네이아스의 방패에 새겨질 위대한 로마인은 아니었다. 대척지의 시각에서 보자면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이 그들의 삶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르길리우스는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카토를 입법자로 삼은 고결한 사람들이 따로 떨어져 모여 있었다." 시인은 다른 곳에 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보며 이렇게 넌지시 꾸짖었다. "당신 나라의 손을 당신 나라의 심장을 향해 뻗치지 말라!"
 아우구스투스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카이사르가 암살된 회랑 안쪽 한 곳에 있던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조각상을 폼페이우스 극장의 웅장한 문과 마주하는 아치형 위의 오히려 더 잘 보이는 자리로 옮기게 했다. 그는 카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 했던 것을 보면 그가 좋은 시민이며, 좋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본문 P380~382

 

그리고, 재밌었던 것은 한국영화 '황산벌'에서 병사들끼리 전쟁에서 육두문자를 날리며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로마에서의 전투도 굉장히 저급수준의 욕으로 상대방을 도발하려고 했다고 묘사한다. 이 부분에서 박장대소 하고 말았다.
예를 들면 그 욕중에서 "봐라, 옥타비우스. 이거나 먹어라." 라던지 "루키우스는 대머리." 같은 욕이 있다.

 

그 외 몇 가지 시를 덧붙인다.

호라티우스가 지은

 
악티움에서의 옥타비아누스의 공적을 기리는 송가

카피톨리누스 언덕을 파괴하려 하고

제국을 잿더미로 만들려 했으니,
누추하고 병든 반인 무리로,
위대함을 동경하고 달콤한 행운에 취해 비틀거리는 미친 무리로!
하지만 그녀의 모든 함대는 불타고, 거의 한 척의 배도 살아남지 못했도다!

그녀의 욕망은 꺾이고, 카이사르의 갤리선이 이탈리아에서부터
그녀를 쫓아, 환상에 젖어 이집트 포도주에 취한
그녀를 공포라는 호된 현실로
곧 되돌려놓았으니.

호라티우스의 충고
프리무스에게

바람이 불때는 가장 높은 나무가
가장 심하게 흔들리는 법. 높은 탑은
무너지면 산산조각이 날 테니...


아우구스투스는 권력을 지향했으나, 돈에만 눈이 멀지 않았고, 몸은 허약했으나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허나, 소문난 바람둥이였지만 딸의 외도는 허락하지 않았고, 뛰어난 법령을 재정했으나 존속 세습을 이루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보였다. 아그리파와의 돈독한 의리가 없었으면 로마의 황제를 자리는 넘보지 못했을 것이다.

크게만 느껴졌던 로마 최초의 황제가 어떤 한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전기였다. 키를 높이기 위해 깔창을 사용했다는 것만 봐도 친근하지 않은가? 그의 생활은 검소했으나 몇십만명의 사람을 위해 연회를 배푸는 데는 씀씀이가 좋았으니 참 부자였기도 하다.(카이사르에게서 재산의 반을 물려받음.)

 

기억에 남는 본문은 통째로 옮겨적는 부분이 있어서 감상은 짧습니다만...

여튼 500페이지의 책이지만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삼국지처럼 등장인물(주인공이름이 시대에 따라서 계속 바뀜)과 지역이름이 많이 나와서 책을 읽으면서 기억상실에 빠지고,

게다가 아우구스투스보다는 안토니우스에게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지만 나름 재밌게 읽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