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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7일 출간 /김태훈 지음/ 링거스group 출판

 

  가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다 보면 꽤 재치있는 입담으로 배철수와 껄껄대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일요일 정오 즈음의 영화 프로그램이나, 늦은 밤 예능 프로그램이나 여러 곳에서도 이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죠. 어머니께서는 이 사람을 보고 평생 노총각으로 살 사람이라 말씀하셨지만, 아버지는 저런 사람하고 밤새 술마시며 이야기를 나눠야 진짜 이야기가 튀어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바로 '김태훈' 입니다.

 

  - 이 책은 영화와 음악으로 쓴 일기다. 폼 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고 싶고, 아름다운 음악처럼 삶을 노래하고 싶은 철딱서니 없는 마흔 두 살 남자의 지난 기록들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 적힌 한 문장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 마음속으로 굳고 깊게 생각해봤을 겁니다. '영화처럼, 음악처럼.'

  영화 속 주인공을 백 퍼센트 따라 하진 못해도 <아비정전>의 양조위처럼 옷 주머니에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기며 빗으로 머리를 빗어 넘겨보기도 했을 것이고, <트루먼 쇼>의 짐 캐리처럼 어느날 문득 내 주변도 혹시 세트장이 아닐까, 저 바다 끝에 아니면 저 산꼭대기에 다다르면 이곳을 나갈 수 있는 비상구 하나가 있진 않을까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 있을 것이고, <원스Once>에 나오는 글렌 한사드처럼 길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혼자서 불러보기도 했을 것이고, <비트>에서 정우성이 오토바이를 타며 자유롭게 두 팔을 펼치는, 위험하지만 결국 폼나는 질주를 해보고 싶었을 것이고 그리고 또... 그러니까 영화처럼 살고 싶은 마음 말이에요. 마음속에서 어느새 콩알만 해진 아쉬운 그 화려한 콘티와 티저 영상같은 마음들. 여기에다가 음악 얘기라면 입이 팔만 개라도 모자라겠죠? 아 이 노래 혹시 내 노래 아니야? 이 가사 완전 내 일기장인데 이거 나중에 내 OST 폴더에 따로 모아놔야겠다, 하는 야무지고 신기한 마음으로 몇 천 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던 노래들.

 

 

  '내가 오늘 죽는다고 해도, 내일 신문에 글 한 줄 실리지 않을 것이다. 거리엔 여전히 차들이 넘치고, 사람들은 바쁘게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꽤나 감상적인 사유지만, 불행히도 틀린 말이 아니다. 메탈리카의 노래 제목처럼 <Sad but True>인 셈이다.

  - 201쪽,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고 깨닫는 순간   중에서

 

  삭막한 겨울 추위가 느껴질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아이러니하게도 제니스 이안의 <In the winter>이다. 물론 따뜻한 난방의 바에서 목젖 화끈하게 달궈주는 데킬라가 한 잔 있어야 노래를 들을 맛이 난다. 뜨뜻한 아랫목에서 냉면 먹는 기분이랄까?

  - 182쪽, 내겐 너무 추운 겨울을 즐기는 방법    중에서

 

  "어찌 발라드를 꿈꿨건만 생은 점점 펑크로 변해간단 말인가."

  - 142쪽, 영화도 삶도 재미있을 것   중에서

 

 

  책의 내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몰랐던 영화와 음악을 접할 수 있고, 또 이미 내가 접한 영화와 음악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배울 수 있죠. 글 하나의 분량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라 쉽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제 소원이기도 한 '배철수 씨와 껄껄 웃으며 이야길 나누는 시간'을 매주 즐기는 유일한 사람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나마 김태훈 씨를 통해 대리만족을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고작 영화와 음악 조금 안다고 허세를 떠는 게 아니냐고 할 수 있겠죠. 어쩌겠나요. 허세라 해도 지금까지 보고 들어온 허세와는 차원이 다른 허세인데. 김태훈의 허세는 재밌습니다. 허세 같지가 않아서 허세인지도 모르겠고 말도 좀 잘해서 그가 말했던 문장들이 어쩌다 문득 생각나기도 하는 걸요. 아무튼, 재밌습니다. 재밌는 건 일단 접해보는 게 좋겠죠. 접해보고도 너무 싫은 허세 같다면 주변 친구들에게 대가 없이 이 책을 넘겨주세요. 허나 책의 문장이 내 마음속 일기장 같고, 너무 재밌어서 30분도 안 되어 이 책을 다 읽고 또 읽다가 누가 그 책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좀 멀고 따분할 것 같은 히브리어 책이라고 대충 둘러대세요. 저에겐 충분히 그렇게 거짓말 할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지난 번에 봤던 <이터널 선샤인>과 라디오헤드의 1집 <Pablo Honey>를 다시 꺼내어 보고 듣게 해준 김태훈 씨에게 그냥,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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