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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Fish : 빅 피쉬 (2003)

Directed by Timothy William Burton

 

 

 군 시절 GOP에서 근무할 때 병사들의 임무라고는 몇 시간이고 두 눈에 핏대를 세우며 철통경계(?)를 취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처음 실탄을 들고 캄캄한 밤에 근무 투입 되었을 때는 북한군이 내 뒤를 덮칠까봐 얼마나 두렵던지 순진한 마음으로 말 한 마디 없이 근무에 집중했었지요. 하지만 사람의 적응력이 얼마나 빠릅니까? 적막함은 하루 뿐이었습니다. 연일 계속 되는 근무에 지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입을 열고 '노가리 '타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길게는 열시간 정도를 꼼짝 없이 둘이 보내야만 하는 근무라 함께 근무 서는 상대가 무척 중요한데요, 많은 후임들 중 저는 이준혁이라는 친구와의 근무가 참 즐거웠습니다.

 

 준혁 병사와 저는 주로 영화 얘기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때건 대화의 시작은 "군생활 더럽다.. 시간 언제가냐.." 등등의 신세한탄.. 하지만 결국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야 된다는 마음에 금세 대화는 군생활을 제외한 곳곳으로, 특히 함께 공감하던 영화로 흘러갔습니다.  

 "김예찬 병장님 혹시 그 영화 보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저는 대부분  '못 본 것 같은데, 어떤 영화야?' 라는 대답을 하였고, 전역하기 전까지는 확인할 수 없는 영화들을 대화를 통한 상상으로 감상을 하였습니다.

 

  GOP에서 대화와 상상으로 감상한 영화 중 인상 깊었던 첫 번째 영화, '빅 피쉬'를 소개합니다.

전역 직후 상상 속에 있던 이 영화를 실제로 처음 접했을 때에는 머릿속에 맴돌던 아름다운 영상들이 현실과 겹쳐지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팀버튼스럽지 않은(?) 따뜻한 기괴함들은 갓 전역한 예비역의 가슴을 벅차게 해줬지요. 얼마 전 이 영화를 다시 꺼내어 보았습니다. 벅찬 가슴은 어느새 가라앉았고 답답한 심정의 아들이 보였습니다.

 

 

  종종 우리는 허풍쟁이들을 주변에서 보곤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에 도취되어 사실을 얼마나 변형시키며 꾸미고 있는지 눈치채지도 못한 채 썰을 풀어내는 사람들이지요. 공교롭게도 이런 사람들 중에는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의 생생한 영웅담에 신기해 하기도 하고 이야기에 빠져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 절반은 허풍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두 가지 의미의 미소를 지으며 즐거워할 수 있지요. 나와 상관 없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속으로 웃어 넘기겠습니다만 그런 사람이 나와 가까운 친구라면? 내 힘으로 관계 맺은 대상이 아닌, 나의 아버지라면?

 

  현실과 허구의 묘한 경계를 두고 오가며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이 영화에서는 동화 같은 영상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허풍 떠는 아버지를 받아들이게 되는 아들의 모습 또한 인상적입니다. 병상에 누워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음에도 여전히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아버지와 평생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아들의 관계를 어느 한 쪽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마무리 짓습니다. 임종의 순간에 아버지가 용서를 구하고 아들은 오열하며 용서한다는 스토리였다면, 혹은 아버지의 말들이 진실임을 알게 되어 깨달음의 눈물을 짓는 마무리였다면 얼마나 진부했을까요. 진실만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말하며 그대로를 받아들여주기 원했던 아버지는 자신의 마지막 이야기를 아들에게 맡깁니다.

 

  진실보다 아름다운 허구를 이야기하려 했던 것일까요? 저는 그저 아버지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자 하는 아들의 모습이 여전히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현실의 진실들을 알아나가는 과정이 있었기에 마지막까지 당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 고집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진실들을 알 때에 비로소 아버지의 진심 어린 허풍들을 이해하고 그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것이지요. 감춰진 진실, 혹은 가려진 마음들을 대화로 자초지종 짚어가며 풀어나가는 일련의 피곤한 과정들을 생략한 채 눈과 눈을 마주치며 깊이 소통함으로 화해하는 모습이 저의 마음에도 필요로 다가왔습니다.

 

 팀버튼 감독은 자신의 대부분의 작품에 아버지를 억압적인 존재로 그리거나 아예 등장시키지 않고 고아를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 빅피쉬가 개봉 했을 때 많은 인터뷰어들이 이 작품은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를 그린 작품이지 않냐며 질문했다고 합니다. 당시 팀 버튼의 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았는데 그는 영화에서처럼 어떻게든 해결해보려 했지만  불가능하더라고 고백합니다. 대신 이 시기에 팀 버튼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다는군요. 혹성탈출과 더불어 팀버튼스럽지 않다 고 평가 받는 빅피쉬,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추천합니다.

 

 

 

 

 

p.s. 아버지와 아들, 두 인물에만 초점을 맞춰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만, 아들의 아내로 등장한 마리온 꼬띨라르(라비앙로즈, 러브미이프유데어)를 볼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구요, 젊은 시절의 어머니 역할을 맡은 알리스 로먼이라는 배우도 너무나 아름답게 나와 제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중간에 나온 꼬마도... 샴 쌍둥이 동양인들도.. 노파도.... 하하;;